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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술마을

강릉 명주예술마을
역사와 문화를 잇는 두레공동체, 강릉 단오ㆍ명주예술마을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단오ㆍ명주예술마을

강릉단오제는 매년 단오를 중심으로 열리는 강릉의 대표 전통 축제로, 대관령 국사성황과 국사여성황, 산신을 제의 대상으로 한다. 유교식 제례, 무당굿, 탈놀음, 민속놀이 등이 함께 이루어지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왔다.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며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주근양으로 시작해 송신제로 마무리되며 약 한 달간 이어지는데, 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전통문화는 오늘날 문화도시 강릉을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단오제의 주요 행사와 거리 문화가 명주동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명주동은 자연스럽게 전통과 공동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명주동은 강릉 중심에서 서쪽으로 남대천을 따라 자리하며, 고려시대부터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있던 곳이자 읍성과 4대문이 자리한 곳으로, 역사적 흔적이 풍부한 동네다. 그러나 강릉경찰서(1985), 강릉시청(2001), 강릉우체국(2015) 등 주요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이후 활력을 잃은 명주동을 되살리기 위해 주민과 지역이 함께 도시재생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2015년 설립된 강릉 지역의 문화협동조합 ‘파랑달’이다. 파랑달은 파도(wave)와 달(moon)의 이미지를 담은 이름처럼, 지역의 살아 있는 삶·역사·문화를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지금도 명주동 골목을 기반으로 전시, 공연, 문화체험, 클래스, 여행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주민과 예술가, 여행자가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 명주동을 문화예술로 재생시키는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노력과 주민들의 참여로 명주동에는 정원이 가꿔지고 빈 건물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했으며, 골목마다 개성 있는 카페와 창작 공간이 들어섰다. 그 결과 명주동은 지역 주민보다도 여행자들이 먼저 찾는 문화거리로 변화했다. 명주동의 가장 큰 매력은 전통문화와 생활문화, 그리고 도시재생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마을이라는 점이다. 단오제의 거리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동시에, 마을해설사로 활동하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도 하나의 문화적 풍경이 된다. 주말에는 다양한 시민예술단의 소규모 공연이 이루어지며, 2022년 10월 28일에는 명주예술마당과 명주동 일대에서 전국생활문화축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처럼 명주동은 전통·도시재생·생활예술·문화협동조합의 활동이 어우러져 살아 있는 문화 생태계를 만들며 ‘명주예술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독특한 문화적 장소성을 가지게 되었다.

필봉굿 예술마을
마을의 행복을 비는 ‘춤추는 상쇠’, 필봉굿 예술마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강운로 필봉굿 예술마을

전북 임실의 필봉마을은 400여 년 동안 농악의 전통을 이어 온 농악마을로, 임실 필봉농악을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가 뿌리내린 곳이다. 마을 한편에는 오래된 당산나무가 지금도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마을 토박이인 밀양 박씨 집안은 10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필봉마을은 본래 ‘중아리’, ‘중방’, ‘중뱅이’ 등으로 불렸으나, 주산의 봉우리가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긴 모습에서 ‘붓봉’—‘필봉’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인 임실 필봉농악이 있다. 필봉농악을 지키고 전승해 온 필봉농악보존회는 오랜 세월 마을과 예술을 함께 유지해 온 공동체의 핵심 주체로, 필봉마을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끌어 왔다.

필봉농악의 전승과 교육은 오늘날 필봉문화촌을 기반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필봉문화촌은 교육관, 공연장, 한옥 체험관, 도서관, 둘레길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동계·하계 4개월에 걸친 전수교육이 진행되며, 초·중·고 학생을 위한 전통문화 체험학교와 상시 운영되는 풍물굿 아카데미 등을 통해 누구나 농악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

또한 필봉문화촌은 연중 다양한 공연과 축제를 개최한다. 〈필봉정월대보름굿〉, 〈필봉마을굿축제〉 같은 정기 행사와 더불어, 상설 공연인 〈춤추는 상쇠〉, 〈이야기 판굿〉 등을 통해 필봉농악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매년 약 3만 명의 방문객이 문화촌을 찾아 공연을 관람하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을의 활력이 이어지고 있다.

임실 필봉농악은 마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이며, 마을 역시 필봉농악이 있어 정체성을 유지하는 상호적 관계를 이룬다. 필봉농악의 공연은 수평적 관계 속에서 모두가 대등하게 어우러지고, 신명이 나는 동화적 놀이판을 만들며, 경계 없이 하나 되는 공동체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한 공동성·연희성·제의성이 결합된 활력 있는 굿의 형태로, 마을굿이 지닌 본래의 의미와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결국 필봉농악은 필봉마을의 삶과 공동체 정신을 드러내는 문화적 원형이며, 필봉마을은 그 예술을 품고 전승하는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농악의 역사와 마을의 일상이 조화를 이루며, 지역 공동체의 힘으로 전통이 이어지는 한국적 문화경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이다.

윤이상음악마을
분단과 냉전을 넘어 예술 속으로, 통영 윤이상음악마을
경남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음악마을

통영은 세계적인 현대음악가 윤이상을 품은 도시이자, 그의 예술적 유산을 바탕으로 음악 창의도시로 성장한 대표적인 문화도시이다. 통영시 도천동에 자리한 윤이상기념공원은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공간미를 지니며,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통영의 상징적 문화 거점이 되었다. 공원에는 윤이상기념관과 그의 베를린 저택을 4분의 1 규모로 재현한 건물 등 두 개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그의 삶과 음악적 세계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윤이상은 1959년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해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곡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동백림 사건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투옥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고, 이후 스크라빈스키와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가들의 탄원으로 석방되었지만 결국 독일로 추방되었다. 그는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윤이상의 ‘음악적 삶’과 ‘냉전의 삶’은 그의 사후 고향 통영에서 다시 깊게 만났다. 윤이상이 생전에 남긴 간절한 편지는 고향을 향한 그의 마음을 담은 메아리로 남았고, 이 편지는 통영 시민들의 기억과 추모, 그리고 분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5년 윤이상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품이 고향으로 돌아왔고, 2002년에는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출범했다. 이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통영국제음악당,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설립되며 도시의 음악 기반은 점차 탄탄해졌다. 이러한 노력은 2015년 통영이 유네스코 창의도시(음악 분야)로 선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선정은 통영의 예술적 자산을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통영 음악인들의 독창적 창작물과 문화 콘텐츠의 활용 기회가 넓어졌고, 도시의 문화적 자긍심 역시 크게 높아졌다. 동시에 세계 창의도시 네트워크와의 연계를 통해 통영국제음악재단의 활동은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활발해졌으며, 통영은 국제적인 음악도시로서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음악 관련 창의사업과 관광사업의 발전 가능성도 열리면서, 문화·예술·도시발전이 선순환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음악창의도시 통영은 오늘날 윤이상의 예술혼을 품은 도시로서, 국제 네트워크 속에서 통영의 음악적 가치와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윤이상의 삶과 예술은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루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고, 통영은 그 유산을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글로벌 음악도시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원주 춤ㆍ그림책마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2개의 보석상자, 원주 춤ㆍ그림책마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태장동 춤ㆍ그림책마을

문화도시 원주는 생명 사상과 풀뿌리 생태운동에 기반한 오랜 시민 연합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지역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사회적 공동체 역시 원주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시민성과 공동체성은 원주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두 개의 보석상자’를 가진 도시로 만든다. 그 보석상자는 바로 ‘춤’과 ‘그림책’이다.

첫 번째 보석상자인 은 2012년에 시작된 ‘원주 댄싱카니발’을 통해 빛을 발한다. 이 축제는 원주의 대표적인 시민 참여형 거리예술 축제로, 지난 10년간 무대에 오른 참가자는 8만 5,000명, 누적 관객은 355만 명에 이른다. 지역 축제가 난립하는 가운데 댄싱카니발은 역동적인 댄스 경연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특히 이 축제는 시민 참여형, 지속가능성, 지역문화 기획자의 협업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시민합창단, 시민기획단, 시민심사단, 자원활동가 양성과 같은 다양한 시민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댄싱카니발은 경연대회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핵심은 차별과 편견 없이 누구나 춤을 추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무대 위에서는 계급·지위·나이·성별·인종·장애의 경계가 사라지고 웃음과 해학, 즐거움만이 남는다. 그러한 면에서 댄싱카니발은 동시대의 다양한 카니발처럼 중세 사육제가 지녔던 탈권위적 해방의 정신을 오늘날에 재현하는 축제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보석상자는 그림책이다. 원주시는 2019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그 중심 사업이 바로 그림책 도시 프로젝트다. 사실 원주의 그림책 사랑은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2000년대 초반 시민 주도형 그림책 읽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사회적 협동조합과 자율적 문화공간으로 발전하며 지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이 흐름은 2021년 완공된 원주 복합문화교육센터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명륜동에 자리한 이 센터는 원주문화재단, 문화도시 사무국, 그림책센터, 예술가·청년 라운지, 다목적 전시실 ‘미담’, 작가 레지던시, 야외 공연장을 품은 문화 거점 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사업과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핵심 무대로서, 원주가 ‘그림책의 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춤이 원주의 에너지를 드러낸다면, 그림책은 원주의 감성과 사유를 보여준다. 이 두 보석상자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원주가 왜 ‘문화도시’라 불리는지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깡깡이예술마을
조선소 배후지에 꽃핀 문화재생도시, 깡깡이예술마을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깡깡이예술마을

부산 영도구 대평동, 일명 깡깡이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목선 조선소가 들어선 근대 조선 산업의 발상지이다. 행정구역명은 ‘대평동’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마을을 ‘깡깡이마을’이라고 불러 왔다.

그 이름은 지역의 노동에서 비롯되었다. 영도 대평동 일대는 부산 조선업의 배후 공업지역으로, 중소형 선박을 수리하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수리할 배가 들어오면 ‘깡깡이 아지매’라 불리던 마을의 어머니들이 선박 외벽에 올라 녹과 부산물을 망치로 두드려 제거했는데, 그 때 울려 퍼지던 “깡깡” 소리에서 마을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1970~80년대 수리 조선업이 절정을 이룰 때에는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이어진 망치 소리가 마을 전체를 울렸고, ‘깡깡이’는 이곳 노동의 상징이자 삶의 리듬이 되었다.

2015년부터 5년간 추진된 깡깡이예술마을 조성사업은 이러한 대평동의 생활 유산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였다.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공공기관의 협력이 더해져 다양한 문화사업이 펼쳐졌다.

사라졌던 뱃길을 복원하는 영도 도선 복원 프로젝트, 마을 곳곳의 벤치·가로등·벽화·쌈지공원을 예술가들과 함께 조성한 공공디자인 사업,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수집해 기록·출판하는 작업, 마을박물관 프로젝트, 그리고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까지 폭넓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깡깡이예술마을은 대평동의 삶과 노동이 남긴 기억을 지우지 않고, 그 시공간을 품은 채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더해가는 마을이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영도 대평동은 근대 조선 산업의 발상지로서 산업유산과 해양 생활문화 자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예술마을로 조성되었다고 해서 이 마을의 정체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깡깡’ 울리던 망치 소리가 들리던 노동의 현장 위에 예술과 문화가 더해지며, 대평동의 역사와 기억, 부산 항구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깡깡이예술마을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부산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과 산업의 흔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현장이 되었다.

성북예술마을
공유를 위한 협치와 협력, 도심 속 예술인의 창작ㆍ삶 네트워크 성북예술마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예술마을

서울 성북구는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인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마포구에 이어 서울에서 예술인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대학로 연극인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민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 예술 관련 대학이 인근에 밀집해 있어 많은 예술 전공자가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성북구는 주거지와 교육 환경, 문화공간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예술인이 생활하기 좋은 도시적 기반을 형성했다.

성북구에 사는 예술인들은 단순히 창작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사는 마을의 문제와 변화에 깊이 관여해 왔다. 마을 민주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의 의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에 열정적으로 힘을 보태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북구는 삶의 전환과 사회적 변화를 중심에 둔 정책과 시민활동이 활성화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유성북원탁회의(2020)에 따르면 성북구에서는 마을 민주주의, 협치 거버넌스, 사회적 경제, 아동 친화 도시, 마을 학교 등 주민 참여 기반의 다양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성북구 곳곳에서는 예술인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동네 예술인 모임이 활발하게 형성되며 지역의 문화력을 높이고 있다. 정릉동의 ‘축제마당 재밌당’, 성북동의 ‘모모모’, 삼선동의 ‘삼선슬리퍼’, 월곡동의 ‘종종걸음’, 석관동의 ‘돌고돌아’, 장위동의 ‘개구장위들’, 월곡동의 ‘개운산 동네탐방’, 월곡동·장위동·석관동 연합모임인 ‘월장석친구들’, 종암동의 ‘종종걸음’, 동선동 미아리고개의 ‘아름다운 미아리고개친구들’ 등 수많은 예술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성북의 문화적 생태계를 풍부하게 채웠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예술을 실천하고, 지역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풀뿌리 문화 주체들이다.

이러한 예술인 공동체와 시민 주도의 문화활동을 기반으로 성북구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 사업에 도전해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성북이 내세운 비전은 ‘삶과 문화의 순환 도시’이다. 성북구는 ‘공존’, ‘공유’, ‘순환’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예술과 공존하고, 이웃과 공유하며, 삶과 문화가 순환하는 도시”를 목표로 제시했다.

문화도시 성북은 예술인과 주민이 함께 만들어 온 지역의 오랜 실천을 바탕으로, 일상의 민주주의와 예술적 상상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문화를 키워가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성북은 오늘도 ‘함께 만드는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문화 자치를 실천하는 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